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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치유의 날을 기다리며 (홍승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8 17:29
조회
368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함경남도 홍원에서 나신 분들이다. 8.15 전 해에 결혼하셨고 일본의 패망 직후 남한으로 월남하셨다.
유년 시절, 두 분의 정치적 경향을 알기는 어려웠으나 71년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씨를 찍었던 것을 알고 있고, 내가 중학교 무렵 오랜 동아일보 독자로서 70년대의 광고탄압(백지 광고 사태) 때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하셨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대학생일 무렵에는 어느날 아버님과의 대화 중에 일제시대(당신이 청년이셨을 때) 일본의 어느 사회주의 사상가(이름은 기억 못하셨지만)의 책을 감명 깊게 읽으셨던 기억을 언급하셨던 적도 있었다.

특별히 정치적 성향이 두드러지신 것도 아니었고 그저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는, 상식에 기초한 평범한 ‘국민’이셨던 두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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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러다가 어느 무렵부턴가 가끔씩 집안의 식탁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87년 대선 때는 그저 YS냐 DJ냐로 지지 대상이 갈리는 정도로 알았었다.
92년 대선 때부터는 소박한 서민의 집안에서 정치적 격론이 벌어지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되었다. 총선, 지방자치선거, 대선...
선거 때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강도 높은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 되었다.
요즘은 아버님께서 연로하셔서 어머님과 예의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어머님께서는 뭘 모르는 자식이라고 답답해하시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양순하신 분들이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그 자신들이 가난한 서민이면서도 한나라당 의원 못지않고 조선, 동아일보 기자 못지않은 투사가 되신다. 고집불통도 이만저만 아니시다.
소위 ‘빨갱이’나 이북 문제, 심지어 DJ에 대해서까지도 거의 진저리를 치거나 뿌리 깊은 증오심을 숨기지 않으신다.

적어도 부모님과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내게는, 무언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던 어떤 기제가 있어 보인다.
혹독한 군사독재 시절, 대부분이 숨죽여 가며 살 무렵, 이승만과 박정희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아셨던 두 분이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지금 이 마당에는, 박정희를 두둔하고 그 딸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도대체 이유가 무얼까? 무엇이 나의 부모님에게 이런 변화를 불러온 것일까?

나는 나름의 답을 구해 보았다.
크게는 언론의 몰 역사적이고 무책임한 보도 탓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두 분께 분단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할 기회가 없었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상처가 깊어져만 갔다는 결론이다.

80년 전두환의 등장 이후 ‘땡전뉴스’를 비롯하여 군부독재 집단을 찬양해 마지않았던 언론의 오랜 보도를 접했던 두 분은 정치적 문제에서만큼은 서서히 합리적 이성이 마비되어 가셨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분단구조를 최대한 활용해 선정적으로 대북 적개심을 더욱 강하게 불러일으켜 왔던 언론의 폐해는 우리 부모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더해 준 셈이다.

몇 해 전, 주간지 한겨레21에서 베트남에 구수정 특파원을 파견하여 기획특집을 엮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기사를 보면서 나는 꽤 충격을 받았었다.
베트남전 당시의 격전지였던 한 마을을 방문했는데 그 마을의 어떤 할머니(전쟁 때문에 한 눈을 실명하셨고 한 다리도 부상으로 불구가 된)의 말씀이 ‘지난 일은 다 잊었어, 와서 사과하면 다 용서할 수 있어’라는 요지의 이야기였다. 오랜 전쟁으로 국토가 온통 쑥밭이 되었을 뿐 아니라 가족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명이 숨져간,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도 가해자를 아무 조건 없이 다 용서할 수 있는 그 ‘힘’이 도대체 어디서 나올까 하는 생각이 좀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그 ‘힘’의 원천이 불교적 심성(베트남은 거의 전 국민이 불교도인 국가)에서 비롯되기도 하겠지만  ‘통일’이 가져다 준 자연스러운 치유의 기능에서 비롯한다고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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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실정은 분단된 구조로 계속 살아야 했고 이 상황을 이용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화해와 치유’를 사회적, 국가적 의제로 삼아 보지도 못하고 대결과 반목만을 거듭하면서 살아와야 했다.
사람이 ‘사랑’이나 ‘평화’라는 좋은 생각을 갖고 사는 것과, ‘대결’이나 ‘저주’, ‘증오’ 따위를 마음속에 지니고 사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아주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론을 비롯한 소위 기득권층들은 사람들에게 ‘저주’와 ‘증오’를 몸에 지니고 살라고 매일 주술을 불어넣고 있으니 이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적어도 우리 사회의 대부분 언론은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도 감당할 역량이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몇 해 전 남북통일이 될 경우 북한의 토지소유권 문제가 언론에 불거졌던 적이 있었다.
그때 월남할 때 가지고 온 땅문서를 아직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둥 이런저런 보도가 있었는데 당시 나의 아버님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대노하시면서 지금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쩌라고 저런 생각들을 하느냐며 혀를 끌끌 차셨다. 할아버지께서 꽤 상당한 토지를 소유하셨던, 소위 지주 출신이셨던 아버님의 입에서 예상 외의 말씀이 나왔던 것이다.

그처럼 합리적인 생각을 하시기도 하는 나의 아버님과 어머님이 언제나 이 뿌리 깊은 상처로부터 치유될 날이 올 수 있을는지, 얼마나 더 손꼽아 기다려야 할까나.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