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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법제도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정 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1 11:58
조회
483
#1 최근 미국 소송변호사들을 위해 쓰여진 「소송 기법」(Trial Techniques, Thomas A. Mauer)이라는 책을 틈틈이 읽고 있다.  원래 관심 있던 분야였고, 우리나라도 내년 정도부터 배심제와 참심제가 혼합된 국민참여형 재판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하여 읽어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서론이 끝나자마자 배심원을 어떻게 설득하는지의 문제(Psychology of Persuasion)와 배심원을 선정하는 방법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반인이 집중력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은 15분에서 20분 정도에 불과하므로 그 시간을 넘겨서 장황한 주장을 하지 말라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규 교육이 끝난 후에는 다시 학교교육을 경험하고 싶어하지 않으므로, 소송과정에서 변호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듯한 분위기로 변론을 진행하면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것 같은 구체적인 지침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밖에 법정에서 변호사의 위치, 시선처리, 옷차림, 제스처까지 조언한다.

이처럼 고난도의 테크닉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법정에서 배심원들을 상대로 직접 변론을 하는 변호사는 다른 변호사들과는 ‘노는 물이 다른’ 변호사로 평가된다고 한다.

이런 노하우들 때문인지 DNA 검사결과 아내를 살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0.1%에 불과하다던 O.J.심슨도 스타 변호사들을 앞세워 무죄를 받아낼 수 있었다.  O.J 심슨 사건을 예로 들며 배심제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는 것 같다.  배심제가 “무전유죄, 유전무죄” 현상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O.J 심슨 사건의 부정의한 결론은 배심원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의 고질적인 인종갈등에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배심원 12명 중 8명이 흑인이었고, 이들은 담당 형사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변호사들의 주장에 설득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우리사회에서 걱정해야 할 것 역시 배심제 도입 자체보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사회양극화 현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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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살인한 협의로 수차례 재판을 받았던 전 미식 축구스타인 O J 심슨



#2 법원에 갈 때 변호사 배지를 달고 가면 좋은 점이 많다.  금속탐지기를 통과할 때, 가방속을 보여달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고, 준비절차실 등을 출입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탈 때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양복을 바꿔 입을 때마다 배지를 바꿔 달기 귀찮아서 배지 없이 법원에 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도 특별한 문제는 없다.  서류 가방을 들고 당당히 통과하면 된다.  법원에 근무하는 분들은 대체로 변호사와 일반인을 쉽게 구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변호사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배지를 달지 않으면 신분증을 제시해 달라는 요구를 자주 받게 된다고 한다.  최근 여성 법조인 수가 증가하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법조계에서 마이너리티인 것이다.  미국에서는 어떨까.  관심이 있어 몇 가지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무더운 여름 날 냉방장치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형사법정은 매우 더웠다.  그 때 검사가 판사에게 재킷을 벗고 진행해도 되는지 물었다.  판사는 이를 허가했다.  바로 후 변호사(여성이었음)도 같은 질문을 하였다.  판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옷을 전부 벗으면 몰라도 윗옷만 벗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

그렇게 오래 전 일도 아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주목할 점은 여성들 외에 다른 인종의 변호사들(흑인과 히스패닉)에 대한 차별도 광범위하게 존재해 왔다는 점이다.  미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여 상당한 개선책을 제시하였다.  우리는 아직까지 이러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시일 내로 진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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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늘의 마지막 이야기.  스텔라 상(Stella Awards)에 대해서 알고 계신지? 1992년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구입한 스텔라 할머니(당시 79세)는 실수로 커피를 무릎에 쏟아 화상을 입게 되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소송을 할 생각을 못했을 텐데, 스텔라 할머니는 맥도널드가 커피를 비합리적으로 뜨겁게 만들어 화상을 입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하였다.  결과는 스텔라 할머니의 승소, 그것도 우리 돈으로 30억원에 가까운 돈(290만달러)을 받게 되었다.  스텔라 상은 미국에서 제기된 소송 중 이처럼 무모한(또는 무모해 보이는) 소송을 선정하여 주는 상이다.  작년 3위에 선정된 사건을 보니 은행 거래시 부과된 수수료 때문에 수면부족과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면서 소송을 제기한 것도 있다.  이러한 점들만 바라본다면 미국 사법시스템이 불합리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이 사법시스템의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는 방안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다는 점은 수 많은 약점들이 있더라도 우리가 수용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한다.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 12일은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른 모의재판을 실시되는 날이다.  철저히 준비하고 시행되어 국민과 함께 하는 사법제도가 빨리 자리잡게 되기를 바란다.

 

정 원 위원은 법무법인 지평 소속의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