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배움을 생각한다 (김영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45
조회
518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학교를 다니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일까?


최근에 “고전이 건네는 말 5 ”을 읽고 나서 학교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이반 일리치(오스트리아 철학자, 신학자)는 “학교는 사람들이 학교의 교육과정을 따르는 것만으로 뭔가를 배운 것처럼 여기게 한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학교는 학교의 교육적 형식에 불과한 것을 마치 배움 그 자체인 것처럼 만들었다고 했다.


무엇을 배웠는지, 배운 것을 어떻게 활용할 생각인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중요하지 않고 학교에 다닌다는 것, 학교의 교육과정을 잘 따르는 것, 학교가 주는 졸업장을 얻는 것이 중요한 현상이 되었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학기말 시험과 학생생활기록까지 끝난 11월~2월의 교실 풍경은 3월 학기 초의 분위기와는 정반대다. 학교생활에 집중하고 질서 있었던 모습에서 고등학교로의 진학이 결정된 후에는 학생들이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학생 중에 일부는 어떤 이유로든 학교를 나오지 않고 학원과 집을 오가며 고등학교에서 배울 선행 학습을 하고, 학교를 나와도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수업을 하려는 일부 학생과 교사를 방해하기도 하고, 무질서한 모습으로 교사의 훈육에 반항하거나 무시하는 모습으로 일관되게 행동한다. 졸업장을 갖게 되는 학생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배움의 공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돌변한 학생들에게 준비되지 못한 교사들은 심한 자괴감을 느껴 학생들을 방조하거나 심하면 교직을 떠나기도 한다.


학교는 배움의 기회를 모두에게 주었지만,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고 그것에 대한 대안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러한 학교를 지켜보고 있어야만 할까?


이반 일리치의 “배운다는 것”은 수업이라는 형식에 맞추는 일도, 시험점수나 학력을 따내는 일도 아니었다. 배운다는 것은 “역량”을 키우는 것으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 알고 익혀서 자신의 쓰임에 따라 배운 바를 활용하고 삶의 문제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교육은 그런 자세를 길러주는 것이고 이러한 배움이 없는 학교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12042914_10.jpg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학교만이 유일한 배움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가정, 공동체, 지역사회 모두가 배움의 공간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떤 난관에 부딪쳤을 때 자신의 힘으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자율적인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조화롭게 살 수 있게 배우는 공간들이 되었으면 한다.


- 언제나 질문하는 사람이 되길, 수유너머 지음 -


김영미 위원은 현재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2월 2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