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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못한 평화는 전쟁을 잉태하고(이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8-28 12:06
조회
1491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1. ‘일본국헌법’


 일본은 ‘평화’라는 말을 많이 하는 나라다. 현재의 ‘일본국헌법’도 이른바 ‘평화헌법’이라고 불린다. 헌법의 제9조와 전문(前文)의 아래 내용 때문이다.


제9조 1항.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제9조 2항.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 외 전력은 이를 보유하지 아니한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전문(前文)’에서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의 국민이 모두 공포와 결핍을 면하고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를 가짐을 확인한다.”


 ‘전쟁 포기’, ‘군대 비보유’, ‘교전권 부인’, 나아가 인류의 ‘평화적 생존권’까지 헌법에 명시해놓았으니, 평화에 대해 더 선언할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 아베 신조 총리는 이 헌법을 바꾸려 한다. 왜 그러는 것일까.



사진 출처 - MBC


2. 미국이 만든 일본헌법


 사실상 현재의 헌법은 이차대전의 승리자 연합군(사실상 미군)이 전범국 일본에 부과한 징벌의 대가나 다름없었다. 1945년 10월 이후 잠시 수상을 맡았던 시데하라 기주로는 천황을 상징적 존재로 천명하고 - 천황의 정치적 권위와 종교적 신격의 포기는 당시 일본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 헌법에 ‘전쟁 포기’ 선언을 담을 테니 천황에게는 전쟁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며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에게 제안했다. 맥아더가 이 안을 수용하면서 오늘의 일본국헌법(1946)이 만들어졌다. 전범 국가 일본을 비군사화시켜 동북아 군사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의도의 반영이었다.


 미국은 교전 상대국 일본을 친미국가로 만들고, 당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던 한반도를 분단시켜 남쪽을 미군 점령 하에 두었다. 연합군으로 전쟁에 참여한 소련 역시 같은 의도로 북한을 점령해 미국을 견제하는 접경지대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미국-일본-남한’과 ‘중국-소련-북한’이라는 대립구도가 만들어졌다. 대립구도는 형성되었지만, 세계사적 차원에서 보면, 이차대전이라는 거대 폭력 사건은 그런대로 마무리되는 모양새였다. 그 대신 안타깝고 안타깝게도 무력했던 한반도는 분단이라는 불행과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는 희생물이 되었다.


3. 평화라는 이름의 전쟁


 일본은 전 세계의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거창한 표현까지 헌법정신 안에 담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었다. 평화를 내세워야 일단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의 주체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모든 일본인의 희망이 아니었다. 진짜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수는 전쟁 패배, 원폭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어 했다. 일본인에게 헌법은 패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불가피한 징표와도 같았다.
그러다가 기회가 왔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전쟁 참여를 위해 주일 미군 상당수가 한반도로 옮겨가자 일본의 안보도 중요하다며 미국의 허락 하에 ‘경찰예비대’를 창설했다. 이것이 나중에 ‘보안대’를 거쳐 1954년 ‘자위대’로 이어졌다. 자위대는 유사시 자신을[自] 지키는[衛] 부대[隊]일 뿐, 다른 나라를 대상으로 전쟁까지 할 수 있는 군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패전 후 불과 십년도 안 되어 자위대가 창설되었고, 이것은 일본인에게 위안이 되었다.


 그 뒤 일본은 미국과 각종 평화조약(미일안전보장조약)을 맺어 일본에 대규모 내란이 일어나거나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을 명문화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보장받으며 자체 군사력도 슬금슬금 키워왔다. 그럴수록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 체제가 굳어져갔다.


 미국과 일본이 서로를 끌어들이면 들일수록 동아시아에서의 냉전 구도는 더 공고해졌다. 미일 중심의 평화는 중소 중심의 평화와 대립했다. 일본의 ‘반공주의적 평화주의’가 ‘미일’과 ‘중소’를 축으로 하는 냉전 체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물론 한국의 이승만 정권도 강력한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대립적 냉전 구도의 일부를 담당했다. 그러면서 그 거대한 냉전 체제에 다시 휘말리는 모순에 시달렸다.


4. ‘책임 없는 평화주의’


 냉전 체제는 물리적 힘을 숭상하는 이들의 작품이다. 아베 정권이 현재의 일본국헌법을 개정해 군대를 정상화하고 유사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는 데에는 힘으로 아시아를 제패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짙게 깔려있다. 현재의 헌법은 일본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패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픈 상처이기도 했다. 아베 같은 이들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그래도 이 헌법 덕에 일본의 재무장화를 반대하는 운동도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일본에 ‘헌법 9조를 지키는 모임’, 약칭 ‘구조회(九條会)’는 일본의 대표적인 평화운동 단체이다. 이 단체에서는 평화헌법을 지키고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화를 저지하기 위한 운동을 펼친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있다. 평화헌법이 일본 평화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 측면도 제법 있지만, 이들조차 평화헌법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의식도 크다. 평화헌법이 패전의 산물이고, 패전은 자신들이 전쟁을 벌인 결과라면, 일본의 평화운동은 자신들의 전쟁 책임을 고백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지만, 전쟁의 원인을 공론화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는 약하다. 평화헌법만 지키면 된다는 식의 ‘책임 없는 평화주의’가 전후 일본 평화운동계의 주류를 형성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전반적인 한계이다.


5. 군사화는 아베의 꿈


 그 극단에 있는 인물이 아베 신조와 같은 사람이다. 아베는 패전의 상징과도 같은 평화헌법을 개정해 자신들의 주체성을(사실은 욕망을) 담은 헌법을 만들고 싶어 한다. 정상국가라면 군대를 보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군대 비보유’를 천명한 헌법을 개정하려 끝없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에 경제대국 2위 자리를 진작에 내어주고, 옛 식민지 한국과의 격차도 급격히 줄어들어가고 있는데다가, 세계사적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불안감이 군대의 확보를 위한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실리주의자 트럼프 시대를 맞아 중국-러시아-북한의 전선에 맞설 수 있는 군사비를 더 지출할 만반의 준비를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실리주의적이고 자국 중심적 정책을 펼치는 트럼프는 대표적인 친미국가 일본의 군사력에 좀 더 융통성을 부여해주면 아시아권의 방위비를 줄이면서도 그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이때를 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은 욕망 표출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버금가는 일본의 정치, 경제, 특히 군사적 재부상을 꿈꾸면서, 힘의 우위에 기반한 일본중심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6. 아베와 문재인의 다른 길


 그러면서 내세우는 모토가 ‘적극적 평화주의’이다. 평화학에서 말하는 ‘일체의 폭력이 없는 상태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일본 중심의 평화를 선도적으로 이루겠다는 의미에서, 영어로는 proactive peace strategy 또는 proactive contribution to peace로 적는다. 물론 현재의 정권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내심이 더 크다, 추측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평화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차가운 전쟁’은 계속된다.


 현재의 한·일 간 갈등의 근본 원인도 일본의 이런 명백한 자국중심주의 때문이다. 당분간 아베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은 적고, 일본의 대외 정치적 태도도 비슷하거나 더 강력하게 지속될 것이다. 이른바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것은 미·일 및 중·소와의 관계성 속에서만 가능한데, 미·일과 중·소가 서로 새로운 냉전 구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이중, 삼중의 난관에 봉착해있는 형국이다. 남북이 좀 더 주체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자체적으로 적대성을 청산해가는 길만이 이러한 대립 구도를 타파하는 최선의 길이다. 그런데 김정은마저 자신의 체제를 보장해줄 수 있을 더 큰 세력, 즉 미국과의 접촉을 남한보다 우선시한다.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있다. 그 길은 과연 가능할까.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간 경협으로 일본을 이기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난제 중의 난제인 것도 분명하다. 이것은 과연 가능할지 다음 기회에 좀 더 정리해보련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