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언론보도의 징벌적 손해배상제(이재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11-04 16:50
조회
868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논란이다. 그동안 주가조작이나 허위공시 같은 증권관련 소송에 적용되던 집단소송제를 모든 산업 분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법무부가 입법예고했는데 언론보도도 그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잘못된 보도로 인해 손해를 가한 경우 손해의 5배까지 배상할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경유차 배기가스 조작 사건을 통해 집단소송제 확대 필요성은 제기돼 왔으나 언론보도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언론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법무부의 설명은 이렇다. ‘언론사도 상법상의 회사이니만큼 당연히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용대상’이다. 이 제도가 주목하는 것은 악의적인 보도로 피해자에게 손해를 끼칠 경우 언론사에 책임을 묻겠다는 점이다. 즉 가짜뉴스라는 것을 알면서도 보도하거나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한 채 보도할 경우 중대과실이 발생한다면 법적인 책임을 언론사에 지울 수 있다.


 이에 대한 찬반입장은 언론의 ‘자유’와 ‘책임’이란 단어로 요약된다. 언론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될 경우 ‘권력 감시와 기업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 재갈을 물릴 수 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도도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과 ‘현행 법체계만으론 언론보도 피해에 대한 구제나 예방이 충분치 않으니 언론의 책임성을 강화할 장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명확한 가짜뉴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자’는 주장의 대립이다.

 진영과는 무관하게 언론계에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 대부분 반대하고 우려한다. 기자협회 등을 중심으로 대응TF를 구성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하지만 언론계의 이런 우려는 사회의 ‘공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여론은 대체적으로 도입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미디어오늘과 리서치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언론 보도 민사소송 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 52%가 ‘찬성’, 23%는 ‘보완 입법 필요’, 18%는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언론계의 우려가 여론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짐작하겠지만 우리나라 언론의 신뢰도와 관련이 있다. OECD 국가 중 대한민국 언론 신뢰도는 20%대로 꼴찌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조사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19’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뉴스 신뢰도는 22%로 38개국 가운데 맨 뒷자리를 기록했다. 한국 언론은 2016년 해당 조사에 처음 포함된 뒤부터 4년 연속 신뢰도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얻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전 세계 180여개 나라 가운데 올해 42위를 기록했다(국경없는 기자회 발표 2020 세계언론자유지수). 한국은 2006년 31위까지 올라갔다가 한때 70위권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지만 완만하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아시아에선 1위이고 언론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미국(45위)보다도 세 단계 높다.


 한국 언론은 언론자유에 비해 거기에 걸맞은 신뢰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논의대상이 된다는 것은 현재 우리 언론이 갖고 있는 폐해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굳이 이런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사실을 왜곡하는 가짜기사와 선동하는 기사가 넘쳐나는 우리 언론의 민망한 현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2004년 언론단체에서 처음 제기됐던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서초동 촛불집회를 계기로 다시 화두로 떠올랐고, 한편에선 언론개혁의 상징처럼 주장되고 있다. 조국 사태 당시 언론보도를 상기해 보면, 검찰의 권력은 수사권과 기소권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론의 지원사격과 엄호 위에서 더 활개쳐왔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언론보도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만능열쇠가 아님은 분명하다. '언론의 자유, 언론활동의 위축가능성‘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이를 도입한다고 해서 가짜뉴스를 완전히 근절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논의가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인 언론의 책임, 신뢰도와 공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지에 대한 답은 아니다. 언론은 권력에 대한 감시를 주요한 사명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언론자체도 이미 하나의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언론이 권력 감시와 언론자유를 내세워 자신들에 대한 견제장치를 거부한다면 언론도 또 하나의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와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바닥을 보이는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그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언론에 대해 요구하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 책임의식에 대해 어떻게 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 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입장도 나와야 할 것이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