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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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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어떻게 청개구리를 먹게 되었을까(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9-03 14:23
조회
1170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일말의 근거도 없이 어떤 ‘썰’을 그냥 사실로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일을 돌이켜보면 단지 어처구니가 없을 뿐입니다. 왜 그랬는지, 어째서 그랬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되어 가는가 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여 년 전쯤, 서울에서 기차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의 농촌 마을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위세 좋은 신도시의 노른자위가 되었지만, 당시 그곳은 리(里) 단위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 마을에는 제 또래의 청년(?)들이 대여섯 명 정도가 살고 있었습니다. 글을 써보겠다는 사람, 무슨 고시 혹은 공무원 공부를 한다는 사람, 명리학을 깨우쳐보겠다는 사람 등등 출신도 배경도 다른 이들이 어쩌다 보니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공통점이라고는 마을 토박이가 아닌 소위 외지인들이었다는 것, 단지 월세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 살게 되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관계는 점점 더 끈끈하게 발전해갔습니다.


 저녁 무렵 가끔 모여 회식처럼 시작되었던 술자리는 몇 달 후, 벌건 대낮의 술판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술자리만큼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형, 동생 하면서 편하게 말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수줍은 성격에 말수가 적었던 A는 어느새 좌중을 압도하는 개그맨이 되어갔으며 날품을 팔았지만 알뜰하게 살림을 하던 B는 일을 나가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무위도식하며 동지애(?)를 다지면서 결국 우리는, 나름 성실하게 살았던 B의 집에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열심히 일하지 않았으니 각자의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 쉽게 아무 때나 술판을 벌일 수 있는 비슷한 처지의 화상들끼리 모여 살고 있어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함께 살던 어느 여름날 밤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별 시덥지 않은 ‘썰’들이 난무하는 중에 누가 어디에서 들었는지 사뭇 진지하게 말을 했습니다. 나만 알고 있던 비밀을 이제야 공개한다는 듯 한 어조였습니다.


 “청개구리가 남자의 ‘정력’에 그렇게 좋대!”


 도대체 여자 친구는커녕 짝사랑하는 상대조차 한 명도 없는 우리에게 왜 그 말이 그렇게 중요한 정보인지 아무도 어떤 생각도 없었지만,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드디어 알았다는 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모여 사는 집 밖 화장실 근처에는 제법 굵은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청개구리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뭇잎 하나에 청개구리 한 마리가 붙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아침에 화장실을 오가며 보았던 그 청개구리들에게 그런 비밀이 있었다니! 그때부터 청개구리가 왜 남자의 정력에 좋은가에 대한 격도 어이도 없는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청개구리가 아침이슬만 먹는 것은 우주의 정기를 먹는 것이다, 저렇게 영롱한 빛깔이 나는 생명체를 본 적이 없다, 대추나무가 원래 귀신을 쫓는 나무인데 거기에 모여 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등등. 의심 없는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 청개구리가 특별한 보양식인 근거는 수백 가지가 넘을 정도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우리는 대추나무에서 대추를 따 먹듯이 청개구리를 한 마리씩 떼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비위가 좋은 친구는 처음부터 날것으로 먹기 시작했고 그렇지 않은 친구는 프라이팬에 튀겨 먹었습니다. 며칠 후, 날것이 더 좋다는 누군가의 말이 설득력을 갖게 되면서 우리는 모두 매일 아침 청개구리를 날것으로 먹게 되었습니다. 왠지 몸이 가뿐해지는 것 같았고 머리도 똑똑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동지애는 더욱더 끈끈해져 갔습니다.


 “완전히 고급 회 맛이야.”
 “이제는 밥 생각이 안 난다.”


 아침마다 우리는 청개구리의 효능에 대해 서로에게 자랑하고 뿌듯해했습니다. 한 열흘 정도 그렇게 지났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한 친구가 일을 보러 서울에 다녀온 저녁이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무언가 큰일이 났다고 써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사실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큰일 났다! 청개구리 몸속에 무서운 기생충이 있대!”


 서울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들었는데 확실하다는, 웬만큼 익혀서는 죽지도 않는, 그 기생충이 심장에 파고 들어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수술도 불가능할 거라는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이번에도 격의 없고 어이없는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청개구리가 몸에 좋다고 말했던 게 누구였던가, 그 기생충이 어떻게 생겼냐, 지금 그게 중요하냐, 화장실 근처가 문제였나, 생각해보니 맛이 조금 이상했다, 말해준 이가 믿을 만한 사람이다, 어떻게 아는 사람이냐, 약국에 가서 물어보자, 약사가 뭘 아냐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갑론을박하는 사이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내 친구 중에 한의사 있어!”


 다음날, 한의사 친구를 둔 동지가 기차를 타고 부랴부랴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동지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뭐래?”
 “몸에 좋을 것도 없고, 그런 기생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닌데?”
 “근데, 그걸 왜 먹냐고...”


 한동안 모두들 말이 없었습니다. 청개구리가 몸에 좋다고 했을 때, 몸에 좋은 이유들을 수백 가지 만들어낼 수 있었으며 반대로 청개구리가 위험하다고 했을 때 역시 많은 이유와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무엇 때문에?
그날 이후 지금까지,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때 그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그 마을에 나를 비롯해 바보천치들 댓 명이 있었다’라고 하면 말이 될까요?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코로나-19와 태풍 관련된 것 외에 다른 정보를 보지 않으려고 애써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에 관한 뉴스를 보게 됩니다. 오래전 화장실 옆에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거기엔 청개구리들이 가득했습니다. ‘썰’들이 난무하고 바보천치들도 있겠지요.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