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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개혁 (김창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8-09 16:18
조회
680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7월 20일 제주대 인문대 교수 19인의 연명으로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성명서의 제목은 ‘우리는 왜 대학의 회복을 바라는가’였다. 뉴스에서도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고 별달리 화제가 되지도 않은 이 ‘뜬금없는’ 성명서를 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접했다. 이 성명서에서 교수들은 먼저 대학의 의미를 묻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대학은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미래가치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먼 곳을 내다보면서 기존의 관행과 규칙, 사고틀을 넘어 새로운 지식담론을 생산’하는 곳이다. 대학을 무대로 형성된 다양한 학문공동체들이 ‘사소한 개념 하나에서도 논쟁을 벌이고 비판하고 소통하는 학문적 토론’이 존재할 때 비로소 대학은 대학으로써 존재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20170726web03.jpg제주대 인문대 교수들이 발표한 성명서 내용의 일부
사진 출처 - 제주의 소리


제주대 교수들이 성명서를 낸 것은 바로 그런 대학의 존재가치가 지금 근원에서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대학이 환금성 높은 기술기능을 생산하고 직무능력을 갖춘 인력을 공급하는 곳으로 인식되면서 학문적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고, ‘연구역량 강화’니 ‘교육지표 개선’이니 하는 명분으로 교육과 학문을 획일적으로 평가하고 효율화하겠다는 위험한 논리가 대학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성명서는 ‘대학의 회복’을 위해, 현재 강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부와 교육당국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과 고등교육 재정지원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 대학이 정부의 구조개혁 평가 및 재정 지원사업 등을 핑계로 벌어지고 있는 비민주적이고 부도덕한 이른바 성과지표 개선방안 따위에서 벗어나 대학다운 정체성과 품위를 회복할 것, 그리고 대학 구성원들 스스로 정부와 대학 당국에 의해 강제된 비정상적 평가와 관리에 반대하고 이런 퇴행이 재현될 수 없도록 학문공동체의 활성화에 적극 나설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 나 역시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대학은 대학평가를 통한 인위적인 구조조정 압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교육의 ‘질’을 관리하겠다며 제시되는 수많은 ‘양’적 지표들은 대학의 풍경을 크게 바꾸고 있다. 교수들은 학술 논문의 양을 채우기에 급급하고 행정적으로 요구되는 수많은 서류들을 채우며 이런 저런 실적을 높이느라 분주하다. 학생들은 상대 평가의 살벌한 현실 앞에서 성적에 애가 닳고 출석 체크에 목을 맨다. 전임교수 강의 분담률을 높이기 위해 교수들의 강의 부담은 커지고 시간 강사들이 해고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취업률 지표를 올리기 위해 갖가지 편법까지 동원된다는 소리도 들린다. 재정 지원과 인위적인 정원단축을 무기로 삼아 대학을 통제하려는 교육 당국 앞에서 대학은 속수무책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학이 다양한 지적 담론이 만개하고 활발히 토론하며 비판적 지성이 육성되는 공간이라는 상식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대학에 어떤 식으로든 일정한 구조 조정이 필요한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구조조정이 ‘자본과 시장의 논리’, ‘효율성의 논리’, ‘경쟁력의 논리’라는 잣대로 이루어지는 건 심각한 문제다. 그것은 대학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의미를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제주대 인문대 교수들의 성명은 매우 절실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들의 문제제기가 어떤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대학에서 여기에 호응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지도 않다.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고 교육부 수장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일단은 기대를 갖고 지켜보자는 생각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주대 인문대 교수들의 성명서는 적어도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일부의 교수들의 인식이 그만큼 절박함을 보여준다. 이들의 목소리를 계기로 이 사회에서 대학이 갖는 의미와 현실, 전망에 대해, 현재 진행되는 대학 구조조정의 문제에 대해, 대학 교육이 가야할 방향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7월 2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