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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안전처를 어찌할꼬 (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44
조회
395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비극은 왜 되풀이되는가. 비극을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비극을 잊어버리면 문밖에 또 다른 비극이 우리를 기다린다. 비극을 기억에서 가장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이들은 비극에 가장 책임이 있는 동시에 망각을 통해 가장 이득을 얻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라는 ‘단군 이래 최대 비극’을 통해 뼈저리게 그걸 느꼈다.


이제는 대통령이 맞는지조차 알쏭달쏭한, 이름을 입에 올리기도 끔찍한 박 모 씨 얘긴 더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박 모 씨를 쫓아내고 나서 책임감있는 국가를 같이 만들기 위해 무척 중요한 문제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한마디로 ‘국민안전처를 어찌할꼬’에 관한 고민의 산물이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한다. 2년 전 국민안전처가 왜 생겼는가? 세월호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국민안전처에게 세월호란 이름을 입에 담기만 해도 큰 일이 날 것 같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볼드모트’일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국민안전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활빈당에 뿌리를 둔 조직인건가.


홍길동은 명백히 아버지를 인지했다. 하지만 국민안전처는 아버지를 숨기느라 바쁘다. 국민안전처는 2014년 11월19일 출범했다. 국민안전처는 출범 이래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사와 분석, 연구 과제라도 한 번 한 적이 있었을까? 국민안전처 장관 박인용이 지난달 출범 2주년을 맞아 소속 공무원들에게 보낸 공개 편지 어디에도 세월호는 없었다.


SSI_20141119182426_V.jpg사진 출처 - 서울신문


지난달 23일 한국행정연구원이 주최하는 '재난안전정책연구' 공동학술대회에서는 국민안전처 차관 이성호가 기조강연을 했다. 그는 그동안 국민안전처가 이룬 성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안전처가 문을 열게 된 배경도 설명했다. 어디에도 세월호 얘긴 없었다. 심지어 국민안전처 출범 배경을 설명할 때도 세월호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뿌리를 숨기느라 바쁘니 자신들이 뭘 해야 하는지도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성호는 기조강연에서 국민안전처가 갖가지 성과를 자랑했는데 그 중 하나가 도로복구 실적이었다. 그걸 왜 국민안전처가 내세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도로복구는 국토교통부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할 일인데 말이다. 예산 낭비 논란을 빚은 안전신문고 애플리케이션은 또 어떤가.


국민안전처는 예방이나 안전교육을 부쩍 강조하는 듯 한데 그것 역시 국민안전처 업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전이란 이름 붙은 게 모두 국민안전처 소관은 아니다. 식품안전을 다루는 1차 책임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게 하는 1차 책임은 교육부에 있다. 군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 주무부처는 국방부다.


그럼 국민안전처는 뭘 해야 할까. 재난대응이다. 자연재난이나 사회재난이 일단 발생하면 안전처가 총괄 지휘감독을 해야 한다. 지금 국민안전처에 필요한 건 안전캠페인이나 예방교육이 아니라 좀 더 실질적으로 현장 인력들이 자율성과 책임성을 갖고 재난대응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민안전처는 장관과 차관이 모두 직업군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상당히 군대식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길 자주 듣는다. 유감스럽게도, 군대라는 곳이 얼마나 현장인력에게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하고, 안전문제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인지 군대 갔다 온 나는 아는게 없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재론하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는 꼭 지적하고 싶다. 박인용은 취임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아침에 상황점검회의를 한다. 그게 재난대응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말도 없이 회의 참석하느라 국민안전처 본부 공무원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지난해에는 회의 준비 때문에 국민안전처 주변에 방까지 구했던 실장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국민안전처는 매우 독특한 조직이다. 외국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도 어렵다. 정권 바뀔 때마다 정부조직을 이리 붙였다 저리 붙였다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명확한 조직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가장 적합한 조직구조를 만들고 적절한 예산과 인력을 배치하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연 국민안전처가 ‘다시는 세월호같은 비극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출생의 비밀을 언제까지 숨기고만 있을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2월 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