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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학교에 대한 보고서 (권보드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0:58
조회
524

권보드래/ 인권연대 운영위원


큰애 담임선생님을 두고 학부모 몇 명이 해임을 요구했다. 교장실을 방문해 육박했다는데, 그 이유로 11개조를 제시했다고 들었다. 금품수수, 불법찬조금 모집, 차별대우 등의 내용이었단다. 금품수수? 그 중 두 명이 각각 옷과 화장품을 내밀었는데 담임선생님이 받았다고 한다. 불법찬조금이라면 나도 안다. 학생들이 2박3일 여행을 갈 때 간식비 등이 필요하다고 해서 기꺼이 냈다.


급식 모니터링이며 교통지도며, 학교엔 이런저런 눈길과 손길 필요한 데가 많다. 직장 다닌다는 이유로 그런 일을 면제받다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돈 자랑인지 모르겠지만, 대신 학급비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은 좀 과하다 싶게 열정적인 타입이다. 시험 전날 밤이면 학생들에게 일일이 전화하고, 학교 행사도 꼬박꼬박 챙긴다. 애들 사진도 자주 보내준다. 사실, 나처럼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한 성격으로선 좀 버거웠다.


말도 어찌나 직설적인지 딱 한 번 학부모회에 갔을 때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남학생들은 무난한 것 같은데 여학생들 문젭니다. 얌체가 너무 많아요. 제 것만 챙겨요. 그럼 안 됩니다!” 아이도 힘들어했다. 숙제도 많고 일도 많으니 나중엔 불평도 했다. “공동체란 말이 싫어졌어요.”라고도 했다. 담임선생님은 심지어 교실 앞에 본인 사진을 걸어두기까지 했단다. ‘내가 늘 너희를 보고 있다’는 표식이라며.


요컨대 지나칠 정도로 열정적인 교사였다. 학부모 몇 명이 단도직입 해임을 요구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뜻밖이었다. 귀가 어두워 며칠 후에야 들었는데, 바로 그 날 교장선생님이 학생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긍정적 응답이 많을 테니 그걸 증거 삼아 학부모 요구를 물리칠 요량이었는데, 의외로 다수 학생이 담임 교체를 바란다고 적어냈다고 한다. 그때부터 문제가 더 불거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담임선생님을 옹호하는 이들에 따르면, 문제 제기하고 나선 학부모 중 일부는 열성적 임원이었단다. 학교에 붙어살다시피 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데도 담임선생님이 자녀를 꾸짖고 못마땅해 한 탓에 마음을 다친 것 같다고 한다. 좀 시간이 지나자 그 자녀들이야말로 문제라는 사람들이 나섰다. 교사 말을 우습게 알고 급우들에게도 함부로 대한 게 학교폭력으로 문제 삼아야 할 정도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학부모들이 방문한 예의 그 날 학생들이 담임선생님 사진을 떼어 내 쓰레기통에 버렸단다. 당연히 몇 명이 주동했을 테고 대부분은 어리둥절한 채 지켜봤을 거다. 지금은 그 학부모 중 한두 명이 출근하다시피 교실을 감시하고 있다고 들었다. 담임선생님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다는 거다. 부담임 교사가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는데, 그런 지 1주일여다.


“교장선생님은 왜 이대로 계신 거예요…?” 교육청에 고발할 테면 하시라, 강경하게 나서도 될 것 같은데 분위기가 묘하다. 글쎄요, 교육청 감사 나오고 해서 학교가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으시는 것 같아요. 은퇴 앞두고 있는데 말썽이 싫으시겠죠. 전화라도 한 통 하고 싶지만 당최 사정에 어두운 터라 조심스럽다. 기껏 담임선생님에게 소심한 문자를 넣는다. 선생님, 모든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되길 빕니다. 마음 너무 다치지 마시고요.


20150904055121874123.jpg사진 출처 - 노컷뉴스


문제 제기한 학부모들은 나름의 정의감이 충천한 모양이다. “다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문자가 돌았다고 한다. 다른 한편에선 그 자녀들을 겨냥한 분노가 자라난다. 담임 교체까진 혹시 몰라도 그런 학생들이 기승스러운 교실에 애들을 둘 수 없다는 거다. 학교폭력에 대한 증언이 모이기 시작하고, 최악의 경우 차라리 아이를 전학시키겠다는 학부모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직 중학생들이다. 교실은 지금 어떨까. 어떤 악의와 혼란이 번지고 있을까. 학부모들도 난장이다. 문제 제기한 학부모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고, 담임 해임이나 교체라니 말도 안 된다며 강경한 사람들도 있고, 상당수는 주저주저, 무기력하게 걱정하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선생님도 걱정되고 아이들도 걱정되고 물의를 일으킨 학부모들마저 걱정된다. “휩쓸리지 말고, 차분히 보렴.” 기껏 아이에게 한다는 말이 이 따위라니. 2015년 가을, 대한민국의 어느 평범한 중학교.


권보드래 위원은 현재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9월 1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