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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 현상과 한국 사회 (김창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0:56
조회
408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는 강용석이란 사람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다. 그가 누구와 연애를 하건 불륜을 저지르건 그건 개인의 문제이며 그런 사실이 굳이 까발려지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나오는 방송 프로그램은 구역질이 나서라도 피해 왔고 방송에서 그 얼굴을 안 보게 되기를 바라왔지만, 그가 불륜 스캔들 때문에 방송하차 하는 데 대해 고소해 하는 글들도 마뜩찮기는 마찬가지다. 강용석이 국회의원을 지낸 공인이고 사회적 유명인 이므로 그 정도의 사생활 침해는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비록 공인이라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은 구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정말 문제 삼고 싶은 건 강용석의 불륜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방송가의 스타로 떴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걸 가능하게 한 건, 일차적으로, 강용석을 방송에 출연시켜 화제성을 키우고 이미지 세탁의 기회를 주면서 마침내는 여러 개의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하는 TV스타로 만들어 준 방송사들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상업주의다. 정치권에서 퇴출된 계기가 되었던 그의 언행을 보면 그가 저렇게 대중적인 스타로 떠오른 건 정말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대학생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선 다 줘야한다’는 식의 모욕적인 성희롱 발언을 했고 이후 한나라당에서 제명되었다. 이후에는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등 좌충우돌하면서 대표적인 비호감 정치인으로 낙인찍혔고 총선에서 낙선했다. 그것으로 정치적 생명이 끝나고 곧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것 같았던 그가 되살아난 건 순전히 방송 때문이다.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 양념으로 출연하던 그는 특유의 순발력과 언변을 무기로 일부 프로그램의 고정을 꿰차더니 시나브로 웬만한 인기 연예인보다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예능스타가 됐다. 그 과정에서 국민적인 비호감 정치인이었던 그는 어느덧 말 잘하고 아는 것 많고 재미있는 아저씨 정도로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이대로 간다면 방송에서의 인기를 발판으로 다시 정치권으로 재진입하는 것도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이번 스캔들이 아니었다면 정치권에서 퇴출된 사람이 방송을 통해 이미지를 희석하고 다시 정치인으로 복귀하는 아마도 최초의 사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IE001840097_STD.jpgJTBC <썰전>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가 방송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던 건 종편 채널들의 등장과 함께 더욱 격화된 채널 간 시청률 경쟁과 당연히 무관할 수 없다. 이슈를 만들고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노이즈 마케팅도 서슴지 않는 방송사 입장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화제성을 갖고 있고, 서울대와 하버드대라는 스펙에, 국회의원에 변호사라는 이력, 게다가 화려한 언변과 두꺼운 안면까지 갖춘 강용석은 매력적인 캐스팅 카드였을 게다. 초반에는 물의를 일으킨 비호감 인물을 캐스팅한다는 비난을 받겠지만 시청률만 올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다면 분명 상업적 성공을 이뤄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을 게다. 그리고 그런 판단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강용석을 캐스팅한 방송사들의 전략이 맞아떨어질 수 있었던 건 우리 사회가 바로 그와 같은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용석 같은 인물이 TV스타로 떠오른 현실은 지금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어떤 시대적 흐름, 혹은 지배적인 정서 구조를 반영한다.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는 몰염치,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심리, 무슨 수를 쓰든 돈을 벌고 유명해지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생각, 강용석 현상의 배후에는 바로 그런 정서가 깔려 있다. 그런 정서 구조 위에서, 기본적인 상식과 윤리, 가치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지고,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이 뻔뻔스럽게 고개를 내밀며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녀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강용석 현상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임을 방증한다.


이 사회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사회적 윤리와 대의, 인간적 가치를 좇던 사람들이 줄곧 패배하고 개인적 욕망과 이익, 세속적 가치를 추구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승리해 온 저간의 역사가 이미 대답을 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더욱 안타까운 건 한국 사회가 더 좋은 사회가 되리라는 희망이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그런 정서는 더욱 더 심화되고 강화되리라는 사실이다. 정말 획기적인 역사적 전환을 통해 사회가 변하지 않는 한 강용석이 방송 무대에서 사라진다 한들 우리는 언제든 유사한 현상을 또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8월 26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