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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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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담(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12-19 18:00
조회
1196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쯤으로 기억됩니다.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저에게 외할머니께서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어떤 선비가 이웃 마을에 볼일이 있어 길을 나섰습니다. 선비는 불어난 개울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 전날 비가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징검돌 몇 개만 밟으면 건널 수 있는 작은 개울이었지만 물이 불어 징검다리는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니 개울을 건너려면 신발을 벗고 바지를 허리춤까지 걷어 올려야만 했습니다. 선비는 신발과 버선까지 벗고 바지를 올리리가 영 귀찮기만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중에 좋은 꾀가 떠올랐습니다.


 개울 옆 길 끝에 장승 두 개가 서 있었습니다. 선비는 장승을 발로 넘어뜨렸습니다. 그러고는 장승을 나무다리로 삼아 밟고 개울을 건넜습니다.


  잠시 후에 역시 이웃 마을에 볼일이 있어 길을 나선 이가 있었으니 어느 부잣집의 머슴 돌쇠였습니다. 물이 불어난 개울을 건너려던 돌쇠는 기가 막혔습니다. 어떤 못된 인간이 겁도 없이 마을을 지키는 장승을 통나무다리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돌쇠는 서둘러 장승을 개울에서 들어 올린 후 원래 있던 자리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신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린 채 개울을 건넜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가야 할 길을 갔습니다. 


  문제는 화가 난 장승이었습니다. 스스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쯤으로 생각하고 있던 장승이었는데, 감히 자기 몸을 넘어뜨려 밟고 지나가는 통나무다리로 전락해버렸으니 그 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승은 인간에게 벌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인간에게 무서운 벌을 내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본을 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온몸에 고칠 수 없는 종기가 나서 평생을 고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벌을 받은 사람은 앞서 갔던 선비가 아니라 뒤에 개울을 건넌 돌쇠였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마나 저는 당연히 따졌습니다.


  "할머니, 선비가 나쁜 놈이고 돌쇠는 착한 사람인데 왜 돌쇠가 벌을 받아?"


  당시 저는 외할머니가 이야기를 잘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당한 결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 그게 아닐 거라고 할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끝없이 왜? 왜? 왜? 하고 따지는 저에게, 할머니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나도 몰라 이놈아. 이야기가 본디 그래!"


  '이야기가 본디 그렇다'는 말인즉슨, 외할머니는 당신이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었다는 말입니다. 원래 이야기에서 보태거나 빼거나 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 이야기는 오랫동안 저의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결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저는 그 이야기가 문득 떠오를 때마다 선비는 벌을 받아야 할 나쁜 사람이고 그 때문에 돌쇠는 애꿎은 일을 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선비는 가해자, 돌쇠는 피해자쯤으로 정리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둘의 신분이 양반과 노비로 대비되는 만큼 이야기의 결말은 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올해 고등학생이 된 조카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조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장승이 나쁜 놈이네요, 지가 뭔데 벌을 주고 말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