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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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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가 나를 번뇌케 한다(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6-13 18:43
조회
1245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매우 자랑스럽게도, 나는 시사IN을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정기구독하고 있다. 시사IN을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책을 읽듯이 정독한다. 그동안 내가 읽은 시사IN이 최소 5만 쪽은 넘을 것이다. 그런 시사IN이 이번 주엔 처음으로 나를 실망시켰다. 난민 문제를 다룬 최신호 내용은 아주 훌륭했다. 인포그래픽도 정성이 느껴졌다. 하지만 인포그래픽에 실린 세계지도가 문제였다. 사할린을 일본 영토로 표시해 놨다. 북방 4개섬도 아니고 제주도보다 무려 30배 가량 큰 섬을 통째로 일본에 넘겨줬다.


 지도를 통해 우리는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지도를 통해 우리는 세계를 더 넓게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론 지도가 우리의 인식을 왜곡시킨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는 딱 우리 인식만한 지도를 갖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지도에 집착한다. 신문이나 책에 실린 지도에서 조그만 착오라도 발견하면 무척이나 불편하다. 성의 없는 영토표기는 특히나 화가 난다.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드는 ‘이코노미 인사이트’라는 경제 월간지가 있다. 이 잡지를 5년 넘게 정기 구독하다가 끊었다. 이유는 단 하나. 상습적으로 엉터리 지도를 내놓는데 질렸기 때문이다. 특히 영토표기가 압권이다. 타이완 섬을 중국에 병합하는 대신 하이난 섬을 중국에서 떼어놓는 건 약과라고 할 수 있다. 하이난을 홍콩으로 둔갑시키기도 하고 사할린을 일본에 붙이기도 한다. 심지어 알레스카를 미국에서 분리독립시키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브렉시트를 몇 년 앞서 예견했는지 북아일랜드를 영국 영토로 표기하지 않는 선견지명을 보여주기도 했다. 시칠리아와 사르데냐가 주인 없는 땅이 되는 건 놀랍지도 않다.


 사실 지도 문제만 아니면 ‘이코노미 인사이트’를 지금도 계속 구독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겨레에서 일하는 지인들을 통해 ‘상냥하게’ 알려줬지만 달라지는게 없었다. 페이스북에 ‘준엄하게’ 비판도 해봤지만 감감 무소식. 결국 구독을 취소하는 것으로 내 소심한 지도사랑을 표현할 수밖에.


 최근에는 지정학을 다룬 책을 읽다 기겁을 하기도 했다. 명색이 국제정치를 다룬 책이고 심지어 제목도 ‘지정학’인데 알래스카를 미국에서 분리 독립시켰다. 북극해에 있는 러시아와 캐나다 영토를 모조리 빼먹은 것까지 감안하면 저자는 국가체제를 부정하는 아나키스트가 아닐까 의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사할린을 일본에 넘겨준 걸 보니 서양을 싫어하는 것일까 싶다가도 하이난 섬을 베트남 영토로 표시해놓은 걸 보면 저자의 정치성향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시시때때로 지도를 들여다보며 지도에 집착하는 내 모습을 보고 어떤 언론계 선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도 오따꾸’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일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외국 정부 홈페이지를 뒤지며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자는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도 있는 마당에 “사할린은 일본 땅이 아니라 러시아 땅입니다”라고 하는게 크게 지나쳐 보이진 않는다.



사진 출처 - MBC


 일본 언론에 실린 사진이 제주도를 중국 영토로 표기했다거나, 미국 언론에서 울릉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사용했을때 우리나라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역지사지야말로 인권의 기본원칙이라는데 동의한다면, 그리고 이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외국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는게 흔하게 됐다는 걸 고려한다면, 멀쩡한 나라를 분단시키거나 분리 독립시키는 행태는 자중해주길 바란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