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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그의 죽음을 우리의 죽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4-26 15:46
조회
2105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 사내가 죽었다. 향년이라고 하기엔 이른 나이 55세. 김아무개씨였다. 핸드백을 하나 훔쳤다고 했다. 그 죄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았다. 으레 그렇듯이 기초생활 수급자인 그도 벌금을 낼 돈이 없었다. 한 달에 수급비로 받는 70만원으로 그가 물어야 할 벌금의 액수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이었다. 그는 노역형을 선택했다. 그는 심부전증 환자였다. 돈이 없어 병원 진찰도 겨우 받은 그에게 의사는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돈이 없어 퇴원을 요구했던 그에게 의료진은 기초생활 수급자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긴급지원의 내용을 찾아주었고 그 덕분에 가까스로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며칠 더 요양을 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유를 거부하고 그는 퇴원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돈이 없었다. 퇴원한지 4일째 되는 지난 4월 13일 서울구치소 노역장에 들어갔고 이틀 후 아침 반 시체가 된 그의 몸뚱이를 구치소는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거기서 죽었다.



벌금 150만원을 못내 노역장에 유치된 뒤 이틀 만에 숨진 김아무개씨의 방
사진 출처 - 한겨레


 봄날의 추위가 기승을 부렸던 날 이었다. 손님이 떨구고 간 스마트 폰을 사용한 택시운전사가 잡혔다. 술 취한 동료의 지갑에서 현금 40만원을 빼냈던 직장인도 잡혔다. 그들은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았다. 통상 절도죄에 벌금 150만원 형은 그 정도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받는 벌이다. 그가 훔쳤다는 핸드백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그는 그 죄로 인해 사실상 사형을 선고 받았다.


 서울역 광장위에 흡연실에는 출장 가는 직장인들과 휴가 나온 군인들로 늘 북적인다. 그들의 틈에 섞여 담뱃불을 붙일 때 한눈에도 초라해 보이는 청년이 들어왔다. 얼굴은 흙빛으로 추위에 얼은 듯한 표정이었고 옷은 안쓰러울 정도로 얇았으며 왼쪽 손은 없는 듯 소매가 하늘거렸고 오른쪽 다리는 심하게 절었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오물로 인해 다들 일부러 외면하는 쓰레기통위의 담배꽁초를 두리번거렸다. 담배 찾으세요? 라고 내가 물었고 그는 부끄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봄추위에 언 눈빛만으로는 그가 초췌한 노숙자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맑은 사람이었다. 내가 담뱃갑 하나를 통째로 내밀었을 때 그는 90도에 가까운 인사를 건넸는데 담뱃갑을 뒤적이던 그는 곧 그중에 한 개비를 빼고는 남은 담배를 다시 돌려주었다. 나는 담뱃갑을 다시 돌려받았다. 승차장으로 가는 계단위에서 후회 했다 그걸 돌려받다니.


 “무언가 용서를 청해야할 저녁이 있다 맑은 물 한 대야 그 발밑에 놓아 무릎 꿇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 줘야할 저녁이 있다.” – 이면우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중


 대전으로 내려가는 차창으로는 오후의 햇볕이 가득했다. 나는 그 담배 갑을 돌려받지 않아도 됐었다. 아무 조건 없이 피어난 봄꽃과 품 하나 안들이고도 내리쬐는 봄볕에 내 얼굴을 들이밀며 담배 갑을 내게 돌려주는 청년의 거친 손에 미안했다. 그게 뭐라고 그게 무슨 재산이라고 그걸 돌려받다니.


 맑은 눈빛의 그 청년이 허기질 때면 서울역의 어느 편의점을 어슬렁거리다가 나머지 한손으로 컵라면 따위를 슬쩍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 광장의 의자에 떨어진 지갑을 팔 없는 소매에 숨기고 뒷골목으로 숨어들어 두려운 눈빛으로 지갑의 현금을 셀 수도 있을 것이다. 핸드백에 죽음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훔쳤던 김 아무개 씨처럼. “흰 발과 떨리는 손의 물살 울림”을 싣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그날 오후 눈빛 맑은 그러나 한 팔이 없이 다리를 심하게 저는 청년의 순수함에 답을 해야만 했다. “나지막이, 무언가 고백해야 할 어떤 저녁이 있으나 나는 첫 한마디를 시작하지 못했고 “누군가의 발을 차고 맑은 물로 씻어주지 못했다”고. 55세의 김 아무개씨는 그렇게 죽었다. 심성 고운 맑은 눈빛의 청년 또한 그렇게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