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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의 복음(福音)이 코로나 보다 나은 것은 무엇인가(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8-19 16:35
조회
1125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날아갔다 허망하게. 몇 번의 긴 통화와 회의를 빙자한 몇 번의 술자리를 거친 후 겨우 확정했던 이번 주말 공연. 근 두 달여에 걸친 기대감이란 끈질긴 생명력은 채 1분도 되지 않는 전화 한 통으로 소멸됐다. “코로나가 이렇게 난리인데 이번 공연을 어떻게 할까요?”를 묻는 그에게 “예정대로 진행합시다”라고 배짱 좋게 호기부릴 놈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섭섭하지도 않다. 올해 2월부터는 자주 겪어왔던 일이다.


 지난 5월 18일에 음반을 출시했다. 5년만 이었다. 뭐라도 하나 꼼지락거려야 겨우 한 장 판다. 보도 자료를 쓰고 언론사에 보내는 일도 수월하지는 않았다. 자기가 만든 물건 자기가 좋다고 우겨대는 모양새가 맘 편할 리는 없다. 겨우 자료를 디밀며 들이댔던 결과가 기사로 나올 때마다 순탄치 않은 성취감에 안도하기도 했다. 공연을 해야 했다. 이제 공연만 하면 목돈으로 빠져나간 음반 제작비를 푼돈으로라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 “아~ 이놈의 코로나”


 전파하라는 복음(福音)은 처박아두고 코로나만 옮기고 다닌다는 어느 분의 이야기에 깊은 공감의 웃음을 날리다가 어떨 땐 부아가 치밀기도 하는 것이다. 빛이니 소금이니 진리니 떠드는 자들의 침 튀기는 언사가 요사스러운 망령처럼 떠돌아 누구에게 얼마만큼 빙의(憑依)되었을지를 추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내 속이 속이 아닌 것이다.


 코로나19의 전국적 확산에 지대한 공로가 있는 대구의 신천지가 그랬다. 그들은 무언가를 아주 열심히 신앙하는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열심이었다. 학교는 학생과 선생의 대면 관계를 끊었고 식당은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무너져 내리는 속내를 힘겨운 은행 대출로 채웠다. 정부는 K-방역을 전 세계에 각인시킬 만큼의 능력을 보여줬고 의료진은 짓무르는 땀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얻어가는 일상의 평화를 다시 역병(疫病)의 진창으로 인도(引導)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빛과 진리의 세상을 보여준다는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뭇 중생들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 중에도 순전한 복음이라든가 기쁨이나 우리가 제일이라든가 성인(聖人) 바오로가 이방의 선교사역 중심지로 두었던 지명이라던가 하는 비슷한 이름을 쓰는 교회들이 끊임없이 그들만의 복음(?)을 전파해내는데 그중에 역시 제일은 사랑이라.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라고 일갈할 만큼 사랑엔 자신 있다는 어느 믿음 충만한 선지자 덕에 비대면 강의에 행사취소문자를 수시로 받고 아이의 학원비까지 걱정해야 하는 나는 ‘염병 할 놈’에 졸지에 ‘베라 먹을 놈-벼락 맞을 놈-’ 까지 된 것이다. 아니 벼락을 맞은 것이다. 하늘을 절대적으로 신앙한다는 그들을 향해 하늘이 무섭지 않은가를 울부짖었던 역사가 낯설지 않으니 이쯤 되면 ‘전파하라는 복음(福音)은 처박아두고 코로나만 옮기고 다닌다’ 는 조소에 덧붙여 과연 그들의 복음은 코로나보다 더 나은 것이었을까를 질문하고 싶은 것이다.



보수단체들의 8·15 광화문 집회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나오시오 나와요! 기독교인들이여, 하느님의 일을 거부하는 개 같은 적들을 물리치시오. 저 폭군이 내 성스러운 율법의 책을 땅에 던졌소. 그걸 보지 못하였소? 제아무리 들판에 인디언들이 가득한들 저 자만심 가득한 개에게 까지 굳이 공손하고 비굴하게 굴 필요가 있겠소? 내가 죄를 사하나니 어서 와서 저자를 치시오” - 총.균.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중에서 P98-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받은 하늘의 명령을 외쳤던 수사(修士) 비센테 데 발베르데는 수천 년 역사에 빛나는 화려한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를 살해한 피의 도살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수하였다. 1532년 11월 16일이었고 그날 잉카의 중심 페루의 카르마르카에서 피사로의 군대는 고작 168명이었으며 그들의 간계에 목숨을 잃은 순박한 잉카의 후예들은 8만 명이 넘었다. 같은 하늘의 사명을 받았던 아즈텍 문명의 파괴자 에르난 코르테즈의 학살까지 포함하면 그들 하늘의 군대에 의해 몰살당한 원주민은 남아메리카 인구의 95%에 해당하는 1억여명 가량이다.


 ‘스페인 사람들-로마 카톨릭 제국의 무적 황제이기도 하신 우리 국왕 전하의 신하들-의 신중함, 강인함, 군기(軍紀). 근면성. 위험을 무릅쓰는 항해. 그리고 전투력 등은 기독교들에게 기쁨이요 이교도들에게는 공포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또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가톨릭 황제 폐하께 미력이나마 도움을 드리기 위해 소신은 이 이야기를 기록하여 폐하께 바침으로써...’ - 위의 책 P95-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속임수로 인질로 잡고 결국 처형했으며 잉카문명을 소멸시켰던 이 기록은 스페인 국왕에게 자신들의 충성심을 보고했던 에르난도 피사로와 페드로 피사로-프란시시코 피사로를 포함한 3형제-를 포함한 6인의 증언으로 자랑스런 식민지 개척자의 역사가 되어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성경을 쥐어 주었다. 그 대신 그들은 우리의 땅을 가져갔다”는 데스몬드 투투(Desmond Mpilo Tutu) 주교의 얘기는 기독교로 포장한 서구 식민지 세력의 아프리카 침탈사를 한목에 보여준다.


 “그대들은 어떻게 해서 저 하늘이나 대지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대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대지의 모든 부분이 신성한 것이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신성한 것이다. 나무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홍인(紅人)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는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대지를 결코 잊지 못한다”


 푸른 별과 생동하는 들짐승들을 이웃으로 모셨던 아메리카 대륙의 마지막 인디언 시애틀(seattle) 추장의 연설은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한을 대변한다. 원주민들에게 땅을 강요했던 당시 미국의 14대 대통령은 프랭클린 피어스였고 그 역시 영국에서 도피한 청교도의 후예였다.


 굳이 외국의 사례를 들것도 없다.


 “그때 공산당이 많아서 지방도 혼란하지 않았갔시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 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그러니까니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됐지요.” - 윤정란, <한국 전쟁과 기독교>, 한울, 2015-


 북한의 체제 특히 토지개혁에 불만을 품은 기독교인들이 해방 후 1953년까지 약 7만-10만 가깝게 남쪽으로 내려왔고 장로교와 감리교의 교권을 장악하며 개신교의 여론을 주도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극단적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한국 예수교 장로회의 큰 어른으로 추앙받는 고 한경직 목사의 증언은 1948년도부터 벌어진 한반도 남녘의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섬뜩해진다. - 이지상,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삼인, 2019-


 해방 후 1%에 해당했던 기독교인의 인구는 현재 20%를 상회한다. 인구 증가율까지를 포함하면 해방 후 적어도 30배 이상의 비약적 발전을 한 셈이다. 성장의 근저(根底)에 있는 반공과 독재 시절에 누린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여 한국 사회가 친일, 반공과 더불어 기독교의 사회라고 진단하는 어느 사회학자의 규정을 빌리지 않더라도 작금의 상황에서 이들이 전하는 복음이 코로나 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유효하다. 이들이 전하는 복음은 얼핏 보더라도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 폐지는 물론 비리사학 근절을 위한 사학법 폐지 반대에 성도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고 목숨 바쳐 탈출한 이방인들을 타종교라는 이유로 혐오하는가 하면 최근의 차별 금지법 반대에도 열을 올리는 등 모든 이들의 살림을 위해 스스로 죽어간 청년 예수의 삶과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사랑이 제일이라는 교회 관련 코로나 확진자가 450명을 훌쩍 넘었다. 지난 2월 대구 신천지 교회의 31번 환자 발생 이후 한국 교회는 신천지를 비판하는데 집중했었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사안은 접어두고라도 코로나 전파로 인한 한국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일부 교회에 대한 비판은 교계 내에서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연합회의 전 총회장님이셨던 그 목사님에 대한 회개 요구도 빗발쳐야 한다. 세상의 상처받은 자들을 위로해야할 교회를 오히려 뭇 대중들의 비아냥의 대상으로 만든 죄, 교회 모독죄, 기독교인 모멸죄를 물어야 한다.


 대인춘풍 대기추상(待人春風 待己秋霜)이라 했다. 타인을 대할 때는 봄바람 같이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릿발같이 하라는 공자님의 말씀이다. 한낮 동양 고전으로 치부하는 어록도 이럴진대 우주 만물의 근원, 하늘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못할 이유가 없다. 성서가 논어보다 못하다면 이 또한 교회 모독 아닌가.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