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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주체가 시작되었다: 북한 이야기(이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0-04-01 15:39
조회
1519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북한은 ‘조선노동당’과 ‘공화국’의 창건 이후, 특히 김일성에 의한 유일 지배가 본격화된 이후, 기성 종교를 강력히 규제하고 종교 행위를 처벌했다. 1958년부터는 종교인(특히 기독교인) 색출과 탄압을 대대적으로 감행했다. 종교는 ‘지배계급이 인민을 착취하는 수단이자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도구’이며, 나아가 각자의 주체성을 말살시키는 ‘미신’이라고 간주하고서, 지속적인 반종교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이미 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제도로서의 종교는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거의 사라졌다. ‘종교’에 해당하는 ‘교’라는 말을 그것도 사석에서 사용하는 정도로 변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예배’와 같은 공식적인 종교 의례는 물론 ‘신앙’, ‘하느님’, ‘하나님’과 같은 말도 거의 사라졌거나 아예 들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설령 알더라도 공개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언어이다 보니 그에 대한 개념도 아주 막연해졌다. ‘신부’나 ‘목사’라는 말을 모르거나, 들어봤더라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목사’와 ‘스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종교적 경험’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른바 민간신앙 영역이 대표적이다. 북한에서 ‘미신’이라고 부르는 민간신앙도 억압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형법상의 강력한 처벌 대상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돈만 오가지 않으면 처벌까지는 받지 않았다. 종교적 표현의 경계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은밀한 정도로는 전승되어왔다. 가령 조상 제사 분위기는 좀 더 분명하다. 북한에서도 돌아가신 분의 기일과 생일에 상차림을 한다. 조상을 잘 받들어야 복이 온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비록 신령, 영혼, 하느님과 같은 언어들은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적어도 5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는 용왕님, 터줏대감, 삼신할머니, 성황당과 같은 언어는 크게 의미화하지 않은 정도로 잔존하고 있다. 지옥, 천당과 같은 언어는 없지만, 황천길, 저승길 정도의 언어는 큰 의미 없이 전승되고 있다. 이러한 언어에 의미를 부여하는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 북한에서도 오랜 민간신앙적 세계는 지속 전승 중인 것이다.


 무엇보다 점보기가 성행하고 있다. 가령 1994년 김일성 사후 초유의 가뭄과 수해로 인한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면서 미신으로 여기던 각종 오랜 풍습이 다시 성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신격화한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그동안 억압되어 음지에 있던 민간신앙 혹은 토속신앙이 양지로 나오고 있다. 청소년에까지 부적, 점치기, 주패(화투나 트럼프)를 통한 신수 보기 등이 표면으로 드러났다. 특히 고난의 행군 이후 장마당이 등장하면서 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장사를 앞두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점부터 쳐본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한다. 탈북과 같은 ‘거사’를 앞둔 경우라면 점의 중요도와 빈도수는 훨씬 커진다. 거사를 감행할 날짜, 방향, 상황 등을 묻기도 한다. ‘직업적’ 점쟁이는 없고 ‘복채’와 같은 고유 용어도 없지만, 용하다고 소문난 이들은 동네마다 한두 명씩 있다. 전국적으로 수백 명은 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결혼, 장사 등 크고 작은 일들에 앞서서 점쟁이와 먼저 상의하고 결정하는 일이 흔하다. 손금, 관상, 사주 등을 주로 보며, 여기에는 보위부원도 예외가 아니다. 보위부도 이 사실을 알지만, 자신들도 점을 볼 뿐만 아니라, 점쟁이의 영험함으로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올까 봐 점술 행위를 눈감아주곤 한다. 주술적 정서가 제도적 관례보다 더 크게 작동하면서 드러내놓고 공론화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일들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점술, 사주, 팔자, 조상 숭배 등 그동안 ‘미신’처럼 여겨지던 것이 재등장하고 있는 것은 ‘고난의 행군’ 이후 경제적 위기 상황 하에서 은밀하게 전승되던 기층적 생활문화가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당국에서 ‘미신행위 풍습 근절을 위한 비판 토론회’를 열기도 했는데, 이것은 강제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종교성 자체는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이런 현상에서 우리는 북한에 헛된 ‘미신’이 발흥하고 있다는 사실보다는, 정치적 억압으로도 막을 수 없는 민중의 원천적 종교성 혹은 심층적 차원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의 일방적 통제 시스템이 느슨해져가고 있는 증거로 삼을 수도 있겠고, 한반도 구성원들이 견지했던 오랜 종교적 정서는 정치적 억압만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는 증거로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소련이 해체된 이후 오랜 정교회 전통이 다시 부흥하고, 중국에서 유교를 도리어 국민 통합 정책의 일환으로 내세우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북한에서 민간신앙은 원칙적으로는 억압의 대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삶의 근원적 동력으로 작용하는 원초적 인간 현상이다. 무엇보다 민간신앙의 발흥 현상에서 북한 주민의 진정한 자발성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비판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민간신앙이 발흥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떤 형식으로든 북한 주민의 자발적 선택의 결과이다. 이러한 자발적 선택은 인간에 대한 완전한 통제란 있을 수 없으며, 북한 사회가 오랜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북한 민중의 선택이 남한 민중의 기층적 정서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체제와 제도의 통일도 사람의 문제이며, 그 핵심은 분단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정서에 대한 깊은 교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억압과 감시 하에서도 자신의 필요와 형편에 따라 스스로의 행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주체적 행동이다. 북한에서 진짜 주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