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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좀 변해보면 안될까? 북한만 변하라고 우기지 말고(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3-21 17:12
조회
1049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평화는 밥을 공평히 나누는 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대륙에 밥이 있다고 믿는다. 당연히 대륙에 평화가 있다. 지금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평화를 찾아 가는 일이야 말로 새로운 미래에 대한 도전이다. “대륙의 꿈은 북한을 넘어서지 않으면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말을 신뢰한다. 전쟁에 대한 공포, 양 체제의 반목으로 인한 대립, 즉 분단에서 기인한 각종 불완전 요소가 상재하는 상태에서 대륙과의 소통은 궁극적 평화의 길에 이를 수 없다.


 북한은 금단의 땅. 비밀의 전진 기지였다. 70년을 미국과 전쟁했으니 사회 기반 시설은 물론이고 지나가는 자동차 한 대, 고기 잡는 어선 한 척의 숫자까지 군사력이고 곧 군사 비밀이었다. 그들이 공식 매체를 통해 발표하는 사항이 아니면 도대체 알 수 없는 제국이었고 더 궁금한 사항들은 행간을 통해 짐작할 뿐이었다. 알 수 없는 존재의 비밀은 평가에 있어서 양극화되기 마련이다. 지극히 신비화 되거나 철저하게 악마화 된다. 마치 천국과 지옥처럼.


 80년대 중 후반, 일부 학생 운동권 세력에 의해 북한이 신비화 된 적은 있으나 그 세력들은 거의 감옥에 갔고 철저한 악마화는 남한 사회에서도 일반적인 일이었다.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과 북 정상이 실질적인 한반도 종전 선언을 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우리가 사는 민주주의의 골간이기 때문이다.


 두만강 철교가 훤히 보이는 언덕에 올라갔다. 건너편 나진 선봉이 훤히 내다보이는 러시아 국경 하산(Хасан)에서였다. 딱히 국경이라고 느끼기에 너무도 허술한 경계선에 놀랐다. 각진 삶을 사는 이들에게 경계란 생명과도 같은 것이어서 경계를 조금이라도 허락하는 순간 목숨이 달아나는 듯 한 공포에 젖어든다.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남과 북은 밤하늘의 별보다 더 많은 지뢰를 묻어놓고도, 빛나는 청춘들에게 살인 무기를 들려놓고도 당연하게 살았다. 그러나 두만강 국경엔 설치한지 4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철조망은 녹이 슬었고 초소가 있으나 총을 든 병사는 없었다. 바람을 거슬러 날개 짓 하는 한 무리의 새떼들은 대륙으로 향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칡꽃 몽우리는 향내 없이도 강 건너 아이들의 놀이터로 달려갔다. 하산역으로 굉음을 울리며 들어오는 화물 열차를 보았다. 기관차의 방향이 북쪽이니 북한의 나진 선봉을 지나 두만강 철교를 건너온 것이 틀림없다. 속도는 약 시속20km를 넘지 않는 듯 보였다. 기차의 칸 수를 일흔셋 까지 세다가 숫자를 잃어버렸다. 그 뒤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기차의 꽁무니에 걸터앉아 나도 평화가 되어 대륙의 어디든 따라가고 싶었다.



사진 출처 - 평화방송


 좋던 싫던 친해져야만 한다는 게 실감났다. 무기를 더 쌓아야 평화가 온다는 이 땅의 신념들은 모두 거짓이었다. 너무 간단했다. 서로 바라보고 얘기하고 웃고 손잡아야 평화였다. 내가 본 그 국경의 평화는 조, 러 양국이 눈 붉히고 싸울 일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평화의 시대, 대륙의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은 서로 친해지기 위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상례다.


 굶어 죽는 사람이 넘쳐 망한다.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 때문에 망한다 했지만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북한의 모습은 활기차다. 평양의 거리는 높은 건물에 휘황찬란한 조명이 번뜩이고 각 도시엔 북녘 동포의 웃음이 넉넉하다. 거기도 당연히 사람이 사는 곳이니 여타의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 비길만한 발전의 모습이 없을 리 없고 그것으로 신기해 할 필요는 없다. 다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분단 70여년 더욱이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30여년 마땅한 우방에 기대지 않고도 그 세월을 견뎌온 북한 사람들의 힘은 무엇인가. 그것을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모두들 “북한이 변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설마 북한만 자신이 원하는대로 변하고 자신은 하나도 변하지 않겠다는 궂은 심보는 아닐 것이라 믿는다. 교류와 소통은 당사자 간의 호흡을 주고받는 일이다. 더 좋은 향기를, 더 많은 웃음을 나누기 위해 쌍방 간에 노력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10만의 평양시민들에게 호소했다. 평화로 새 시대를 열어 가자고. 뜨거운 박수로 그들은 화답했다. 서로 덕담을 했고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벌써 아득한 이야기로 변했지만 그날의 뜨거움은 언제나 유효하다. 제 2차 북미회담의 미합의로 인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답보는 곧 언론과 여론의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또 하나의 겨레를 맞이하기 위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것이 평화로 가는 길이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